

“…오늘도 내륙 지방을 중심으로 낮 기온이 35도 내외로 매우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양시백은 동네 슈퍼에서 라면을 고르다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일기예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안에도 선풍기 틀어도 무진장 덥구나. 양시백은 한 손으로 티를 펄럭거리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라면 묶음 포장된 것을 골랐다.
그는 가끔 여기서 일기예보를 본다. 자기만 그렇게 덥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작년까지만 해도 태권도장이 더우면 더운 거고, 추우면 춥다고 넘겼다. 이 정도라면 하나도 안 덥다고. 늘 아픈 것을 참아온 자신에게는 식은 죽 먹기인 줄 알았다. 관장님! 이건 선풍기만으로 버틸 날씨가 아니라고요! 양시백이 올해 유독 덥다고 말할 때마다, 최재석은 기합으로 버티라며 양시백의 눈치를 피하기만 했다.
양지 태권도장에 있는 텔레비전은 진작 고장 난 지 오래되었다. 최재석 관장이 주워온 고물 텔레비전. 그건 자신이 명백히 고장 냈다. 그때, 그 자식들이 시비 걸어서…… 양시백은 그들을 생각하면서 자연스레 그날도 떠올렸다. 그들 때문에 어처구니없이 감방에 들어갔다. 저 자식들이 먼저 시비 걸었는데! 경찰은 양시백의 눈을 흘겨보며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때, 최재석이 서에 찾아와 경찰과 자기에게 시비 걸었던 놈들한테 사과했다.
그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서, 양시백은 주먹을 질끈 쥐다가 풀고는 시선을 돌렸다. 아픔을 견디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자신에게 가르친 건 어른이었고, 왜 그래야 하는지 몰랐다. 최재석이 자기 때문에 다시 사과하는 모습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나만 당해야 하는 거지? 얻어터진 꼴로 다시 태권도장에 들어왔을 때, 궁금했던 것들이 뭉쳐져 서러움이 울컥 뱉어져 나왔다. 그 순간, 양시백은 상패를 던졌고 텔레비전에 명중했다.
이런 상황에서 분명 쫓겨날 게 분명했을 텐데. 눈을 질끈 감으면 얻어맞을 줄 알았는데. 양시백은 최재석 관장은 자기가 만났던 어른들과 다르게 자기에게 연고를 발라줬다. 자기 보고 '잘 좀 피해 다니지…', 라면서. 최재석은 자신을 보호할 줄 아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면서, 자신한테 낙법을 알려줬다. 양시백은 그 말을 듣다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그동안 자신은 남한테 맞기 전에 선방을 치는 거라고 알았다. 그렇게 자라왔다. 그게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는데… 문을 잠그자마자, 양시백은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울음소리가 관장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기와 비슷한 꼴이 된 텔레비전을 고치려 했다. 최재석이 자는 틈에 몰래 고물상으로 가서 부품을 얻어왔다.
이제 살금살금 걸어가 관장님이 자는 사이에 텔레비전을 수리하면 끝이다. 그러면 되는데… 그게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관장님은 자다가 깨질 않나. 텔레비전은 예상과 다르게 끝까지 먹통이었다.
양시백이 한동안 질책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텔레비전 없이 잘 살았다. 지금 양시백이 텔레비전을 힐끔 쳐다보고 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검은 봉지에 라면 묶음을 담으면서 다짐했다. 태권도장에 돌아가면 에어컨 냉큼 사러 가자고.
“관장님, 저 왔어요.”
“양시! 이것 좀 봐라!”
딸랑- 문 여는 소리에 맞춰, 최재석은 손짓하면서 양시백을 불렀다. 양시백은 검은 봉지를 잠시 신발장에 내려놓고 신발을 벗고 최재석이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관장님, 오늘 밖이 35도래요! 저만 더워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 말대로 갑갑한 공간에는 더운 공기로 가득 찼다. 아무리 선풍기 바람을 '강'으로 틀었다고 하지만, 단숨에 뛰어온 양시백한테는 찜질방이나 다름없었다. 땀이 얼굴을 타고 내려와 삐질삐질 흘리고 있으니. 최재석은 소리에 맞춰 뒤돌아, 씨 웃으며 모니터 화면을 가렸다.
“우리, 여름 휴가 가자.”
“네? 저희 돈 없는데 어떻게 피서를 가냐고요~ 관장님?”
서프라이즈 선물을 공개하듯, 최재석은 의자를 당겨 양시백한테 모니터 화면을 보여줬다. 화면에는 ‘최고급 호텔 숙박 이벤트 당첨자 발표. 최고급 호텔 숙박 이벤트에 참여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안내 문구가 쓰여 있었다. 양시백은 그걸 재치고 1등 상품이 뭔지 마우스로 잽싸게 눌렀다.
1등- 쉐리톤 그랜드 워커힐 1박 / 2인 (50명)
김, 박, 이…, 최…. 50명의 이름 중에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가운데 이름 자는 ‘*’로 가려져 있지만, 분명 관장님 이름이었다. 전화번호 뒤 4자리도, 관장님 전화번호 뒤 4자리랑 같았다. 같지? 그렇지? 꿈 아니지? 양시백은 컴퓨터를 붙잡더니, 가까이서 화면을 다시 봤다. 어떤 식으로 봐도 호텔 이벤트 응모 당첨된 건 변함 없다. 양시백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어떻게 당첨되었냐고 컴퓨터와 최재석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봤다.
“요즘 땀 뻘뻘 흘리면서 더워했잖아. 왜, 싫어?”
“아뇨… 저야 휴가 가면 엄청 좋죠~ 그런데 태권도장은 어떻게 하려고요?”
“휴가 갔다고 하면 되잖아. 뭘 그렇게 걱정해? 보호자한테 문자 보내고. 잠깐 쉬는 걸 가지고.”
인상이 사나워서 기뻐하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우나, 최재석의 시선에서 양시백은 분명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최재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어깨동무하면서 크게 웃었다.
“그럼, 8월 2일에 여행 가는 거다?”
8월 2일이 지나기 전까지 최재석은 양시백에게 어디로 여행 가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양시백은 호텔 사진만 봐도 거기가 어디인지 감이 안 잡혔다. 그때 빠르게 스크롤 바를 내리는 게 아니었는데. 양시백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관장님 따라 서울역 안으로 들어갔다. 최재석이 그에게 표를 건네서야 어디로 가는지 알았다. 동해로 가는 건가요, 저희? 처음 가는 곳. 양시백은 표를 손에 쥔 것만으로도 설레었다. 그동안 자신은 여름에도 콘크리트가 어울리는 곳에서 지냈다. 좋든, 싫든 그곳에서만 머물러야 했다. 머문 곳에서 떠났을 때도, 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낯선 곳으로 향한다? 양시백한테는 그 자체가 낯설었다.
기차 창문 너머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일기예보에 나온 대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게 보이지만,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초록빛은 여느 때보다 반짝거렸다.
“뭘 그리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냐?”
거기에 뭐 있냐? 최재석은 폴더폰을 접고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더니 양시백 옆으로 몸을 내밀었다. 어디 한번 대단한 게 있나? 양시백은 그런 그가 부담스러운지 몸을 뒤로 뺐다.
“창문 보는 게 어디 덧나요?”
“아니~ 뭐 재미있는 게 지나가면 같이 보자는 소리지~ 콩 한 쪽도 나눠 먹듯.”
“무슨 비유가 그래요? 그리고 콩은 맛 없잖아요. 기왕 먹는 거, 라면 끓여 먹으면 안 돼요?”
“너랑 같이 라면 나눠 먹으면, 한 봉지로는 무리지 않나?”
“아~ 관장님~ 저랑 라면 한 봉지로는 무리인 거 잘 알면서?”
라면 이야기하니까 갑자기 배고파졌잖아요. 양시백은 자세를 고쳐 앉더니 군침을 삼켰다. 아까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 따윈 이제는 안중에도 없다. 최재석은 이때를 위해 준비했다면서 맥반석 여섯 개를 꺼냈다. 최재석이 맥반석을 내밀자, 그제야 양시백은 맥반석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이게 끝이에요, 관장님?”
“얀마, 그렇게 빨리 먹으면 어떡해?”
“갑자기 관장님이 먹을 거 이야기해서 그렇죠. 말 안 꺼냈음 배고프다고 생각 안 했을걸요?”
“그래도 그렇지. 내 것까지 다 먹으면 어떡하냐.”
동해로 가는 기차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바깥 풍경에 매료될 틈도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양시백과 최재석에게는 사진에 찍힌 것처럼 그 순간이 계속 이어질 거라 착각했다.
“폭염 경보기 발효 중인 전국 대부분 지역은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상캐스터의 말대로 다들 열대야 때문에 잠이 안 오는지 해안가 주변은 밤늦게까지 시끄러웠다. 호텔에서 맘껏 에어컨을 틀어도 그만이지만, 최재석은 감기 걸린다며 에어컨을 끄고 잠을 청했다. 이런 후덥지근한 날에 잠도 잘 자는 관장님이 신기했다. 기차에서 호텔로 오는 것만 해도 더워서, 바로 해변에 나갈지 고민할 정도였다. 기왕 온 김에 바다에 발을 담그며 여름을 즐기자고, 침대에서 겨우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갔다. 이글이글 무언가가 익는 소리와 매미가 하모니를 불렀다. 그 때문인지 더 덥게 느껴졌다. 최재석과 양시백은 더워서 티를 펄럭거리다가 못 참고 다시 호텔로 들어갔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호텔 안에서라도 휴가를 즐기자! 그들은 호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호텔 서비스를 맘껏 누렸다. 평소라면 상상 못 할 호화로운 하루. 어쩌면 평소보다 힘을 더 써서 금방 지쳐 잠든 거 같았다.
양시백은 날카로운 눈매로 깊은 잠에 빠진 최재석을 째려보고는 에어컨 리모컨을 가져가려고 했다. 에어컨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누를 때마다 최재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양시, 나 아직 안 잔다. 아니, 무슨 귀신도 아니고. 찬 바람이 완전히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관장님은 어떻게 다 아냐고요. 양시백은 하는 수 없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하나도 안 더워, 안 덥다고. 기합으로 더위를 참으려고 했지만, 양시백은 더위에 지고 말아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안 되겠다. 밖에 나가면 괜찮겠지. 양시백은 옷을 갈아입고 모래사장으로 나갔다.
밖은 의외로 서늘했다. 아깐 창문 여니까 덥던데, 무슨 일이지? 양시백은 추위에 벌벌 떨며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이라 호텔 로비에는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더운 공기가 스멀스멀 들어오는 거 같아, 양시백은 다시 나갔다. 아까 내가 잘못 느꼈겠지. 한 번 더 밖에 나가자, 서늘한 공기는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여기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는데. 옆방에서 들른 대화가 아니었다고. 양시백은 철썩거리는 파도에 맞춰서 걸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사부작거리는 발소리가 자기 것과 겹쳐 들렸다. 누구야! 양시백은 참다못해 뒤를 돌아봐 바로 방어 자세를 했다. 하지만 밤으로 물든 바다와 모래사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양시백, 혼자였다. 뭐야,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가 착각했다고 단정 짓기에는 다시 걸어도 비슷하게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겹쳐 들렸다. 분명, 근처에 사람이 있다. 숨지 말고, 어서 나와! 그는 뒤를 돌아 바로 발차기를 했다. 기척이 자기 근처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헛발질이었다.
“거! 잠 좀 잡시다!”
양시백에게 돌아온 건 질책이었다. 호텔 4층 창문이 확 열리더니 수염 덥수룩한 중년 남성이 세차게 소리 질렀다. 죄송합니다. 그는 눈치 보며 고개를 숙였다. 잘못 느꼈나? 잘못 느꼈다기에는, 양시백은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호텔로 돌아갔다. 장난치면서 자기한테 시비를 거는 사람은 이제까지 본 적 없다. 만약 정말로 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정말 악질이다. 귀신이라면 모를까. 정말 아까 그곳은 바위도 없는 모래사장이다. 가까이서 기척을 느꼈는데도, 주변에는 사람 한 명도 안 보였다. 근처에 숨을 곳 하나도 없었는데.
잠만. 그런데 자기가 무슨 잘못 했나. 생각해보면 억울하다. 양시백은 샤워하다가 거울 너머의 자신을 향해 째려보다가, 눈매를 건드렸다. 그러고 보니……
양시백은 새벽에 있었던 일화를 자기와 마주 보는 사람한테 다 알려줬다.
최재석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어넘겼다.
“일기예보 잘못 나왔겠지.”
아니면 양시, 네 뒤에 귀신이 아직도 붙어 있을 수도 있고. 최재석은 정말로 양시백 등을 관찰하려고 몸을 움직였다. 아니, 정말 여기까지 따라왔어요? 양시백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등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하하, 귀신이 무슨 거머리도 아니고. 최재석은 무릎을 ‘탁’ 치며 목소리를 평소보다 낮게 내리깔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 전에 거기 호텔에서 어슬렁거리던 귀신이 있다면서. 그 귀신이 네가 마음에 들어서 같이 있었나 보다.
“관장님, 그거 거짓말이죠?”
“거~ 거짓말 아니래도.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양시백의 이야기가 꾸며진 것인지 최재석도 모른다. 최재석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시끄럽던 기차 안은 금방 조용해졌다. 양시백은 트집을 잡다가 금세 잠이 들었는지 새근거리는 소리를 냈다. 새벽에 잠을 못 자니까 그렇지. 이번에는 최재석이 창밖을 쳐다봤다. 터널 안을 지나가는 기차 안은 어두웠다. 그 순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텐데, 최재석은 창문을 바라봤다. 거기서 비치는 사람이 자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듯, 그 사람은 다신 못 만날 것처럼.
그때 양시백이 느꼈던 오한이 귀신이 낸 거라면, 그 귀신은 누구일까?
하늘이 어두운데, 주변 건물이 별을 대신하듯 밝게 켜져 있었다. 오밀조밀하게 세운 건물 사이에서 포장마차 영업은 꾸준히 이어졌다. 최재석은 이곳을 자주 지나쳐 왔다. 지금은 제 발로 여기로 찾아왔다. 자유행동이 허가되자마자, 최재석은 곧장 그를 보러 달려갔다. 백석그룹 경호원, 요즘 들어 자주 마주쳤다. 우연은 필연으로 이끌어주기 마련이다. 경호원은 자신에게 사진을 건네며, 아들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최재석은 당연히 부탁에 응했다. 못할 게 뭐가 있나. 이런 짓도 가리지 않고 하는데. 옆에 있는 상대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다시 한 번 사진을 봤다.
“아저씨.”
사진은 시간이 오래 지났는지, 색이 바래고 끝이 닳았다. 이것도 기억에 불과했다. 오래될수록 사진 속에 담긴 아이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최재석은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놓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저씨 기억에 맞는 아이를 찾았다 치자. 그러면……
“아저씨는 아저씨 아들 만나면 뭐할 거야?”
양태수도 술을 입에 털어놓았다. 그러고는 말없이 빈 잔을 쳐다볼 뿐이었다. 아이를 찾은 다음은 생각해본 적 없는 모양이다. 오래된 사진인 만큼, 아이를 찾기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글쎄. 일단 찾아야지.”
“그래도 얘랑 하고 싶은 거라도 있을 거 아냐? 그래! 바다로 놀러 가거나…”
이제까지 그걸 생각하지 않았으면, 지금부터 상상하면 되잖아. 그렇게 말해놓고 정말 최재석 본인이 상상하고 있었다. 가족이 있다면, 당장 뭘 하고 싶을까? 최재석은 알 리가 없다. 애초에 가족과 만난 적 없는데, 하고 싶은 것을 멋대로 정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상상은 뭐든 이뤄지게 해준다.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상상하게 한다. 아저씨는 언젠가 아이를 찾을 수 있다. 지금이 아닐 뿐이지.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찾자. 여름이 그리 길지 않으니까. 바다가 잘 어울리는 여름에 그를 만나면 더 환하게 웃을 것이다. 햇빛에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그래. 바다 좋지.”
양태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술잔을 최재석에게 내밀었다. 그래, 아저씨. 평소에도 좀 웃고 다니란 말이야. 최재석은 따라 하라는 듯이 활짝 웃으며, 그가 들고 있는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때, 그가 무슨 생각을 품고 웃었는지 알 턱이 없다. 지금 이걸 상상해도 괜찮은 걸까? 최재석은 언제부턴가 곤히 잠든 양시백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저씨 아들 이렇게 잘 지내고 있어.
아저씨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창문 너머로 비치는 햇볕은 유독 따가웠다. 누군가 옆에서 웃는 듯이.
